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 포트 (문단 편집) === [[쿠데타]]를 통한 집권 === >'''우리는 어떤 외부 세력과도 연계되지 않은 깨끗한 승리를 거두었다. [[민주 캄푸치아]]는 앞으로 [[고립주의|고립을 택할 것]]이다.''' >---- >1975년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킨 후 승리연설에서 한 연설 론 놀은 부하들에게 뭔가 얘기를 하면 부하들이 항상 졸 정도였고, 반공주의를 내세워 미군이 일으키는 학살을 방조하고 군부에서도 학살 사건을 일으키며 민심이반을 더욱 부채질했다.[* 때문에 축출 직전이던 1975년 3월에는 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이 선정한 세계 최악의 정치 지도자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크메르 루주의 세력이 급부상하기 시작했고, 시아누크도 크메르 루주를 지지하며 더욱 입지가 커졌다. 결국 1975년 4월 17일에 폴 포트가 론 놀 군부를 뒤엎으면서 크메르 루주 정권을 설립했다. 이른바 [[민주 캄푸치아]]의 탄생이었다. 론 놀은 달아났지만 미처 달아나지 못한 론 놀의 수하들과 가족들을 잡아다 학살한 뒤 그냥 내다버리고[* 쿠데타 직후에만 론 놀 정권의 간부들 '''전부'''와 고위직들까지 합해 총 '''700명'''이 살해당했다. 벌거벗은 세계사 캄보디아 패널 위살봇에 의하면 당시 자신의 조부도 론 놀 정권 내 고위직이었기에 저때 처형당했다고 한다.] 공산당을 장악하고 [[공무원]] 및 군부를 대대적으로 숙청한 다음 반외세 및 반자본주의를 기조로 기존 '사회주의 국가'와 다른,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표명했으며 전 국민 머릿속에서 자본주의 요소를 없애 공산주의로 무장된 투사로 기르려고 했다. 크메르 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할 당시 깊은 산골의 농민 출신의 12~13세 소년들이 대부분이던 크메르 루주의 병사들은 '한 번도 돈을 본 적도 없었고, 자동차도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것 같았으며' 돈에도 관심이 전혀 없어 미화 1만 달러가 든 보따리를 열어보고는 강물에 던져버렸으며, 생선 통조림통의 생선 사진을 보고 생선을 죽이는 독약으로 착각하는 순진한(?) 면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워낙 무표정하고 조용한 나머지 프놈펜에 있던 기자 디트 프란은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크메르 루주가 프놈펜을 점령하자, 프놈펜에는 행복의 기운이 감돌아 젊은이들은 서로 얼싸안고 입을 맞췄으며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들은 크메르 루주의 프놈펜 점령이 '공포에 떨게 했던 로켓포 공격', '징병', '부패하고 지긋지긋한 이 정권'이 이제 끝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프놈펜에 있는 모두에게 폴 포트가 세운 크메르 루주 정권 치하에서 시아누크 정권과 론 놀 정권 때보다 끔찍한 비극이 닥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